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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재료로 만든 음식이 꼭 더 맛있을까요? 해운대 바닷가 근처에 자리한 한 할머니의 보리밥집이 9,000원짜리 한 상으로 20년 넘게 단골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부산 여행 중 우연히 비슷한 곳에 들렀다가 보리밥 한 그릇에 생각이 많아진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이 가게를 알고 나서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가마솥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전기밥솥이 훨씬 편리하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이 가게 할머니는 굳이 가마솥을 고집합니다. "숙을 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로요. 처음 들었을 때 저도 그게 맛에 얼마나 차이가 나겠냐 싶었습니다.
여기서 '숭늉'이란 밥을 지은 뒤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여낸 구수한 국물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밥솥 바닥의 탄 층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향과 구수함이 밥 전체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가마솥이 아니면 이 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가마솥 밥과 전기밥솥 밥을 같은 날 먹어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향이 다릅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구수한 증기가 올라오는 느낌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진주의 한 방앗간에서 일부러 가져온다는 보리는 수확한 지 1년이 채 안 된 것만 쓴다고 하는데, 이 '원곡 신선도'—즉 도정 후 시간이 짧을수록 전분이 살아 있어 밥이 더 잘 퍼지고 구수한 맛이 강해집니다' 가마솥과 만나면서 시너지를 냅니다.
보리와 쌀을 1대 1 비율로 섞는 것도 단순해 보이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보리는 식이섬유와 베타글루칸 함량이 높아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출처: 미국 국립당뇨병·소화기·신장병 연구소(NIDDK)), 쌀과 섞으면 식감도 부드러워집니다. 단순히 전통이라서 가마솥을 쓰는 게 아니라, 재료 각각의 성질을 살리기 위한 선택인 셈입니다.

열무김치 한 가지에 일주일을 쓰는 이유
보통 김치는 담그고 바로 내거나 며칠 뒤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가 열무김치 한 가지에만 일주일이 넘는 숙성 과정을 거친다고 했을 때, 처음엔 과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들으니 달랐습니다.
여기서 '유산균 발효'란 채소 속 당분을 유산균이 분해하면서 젖산을 만드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김치 특유의 감칠맛과 깊은 산미가 생깁니다. 할머니는 밀가루로 만든 풀을 하룻밤 식힌 뒤 절여놓은 열무에 붓고, 이것을 다시 일주일 숙성시켜 손님상에 냅니다. 이 '이중 숙성' 과정이 국물을 부드럽게 만들면서 뻑뻑함을 없애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급하게 담근 열무김치는 아삭함은 있지만 뒷맛이 텁텁하거든요. 일주일 이상 숙성된 것은 아삭함은 살아있으면서 국물이 전혀 다릅니다. 실제로 유산균 발효 식품의 건강 기능성에 관해서는 한국식품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장 건강 개선과 면역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도자기 그릇만 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보다 도자기는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성질이 있어 음식의 향이 덜 날아갑니다. 무릎 수술 후에도 무거운 도자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할머니 스스로와 한 약속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았습니다.
- 밀가루풀을 하룻밤 식혀 열무에 붓는 이중 공정으로 국물 질감을 잡음
- 고춧가루와 마늘을 넉넉히 써서 숙성 후에도 맛이 빠지지 않도록 함
- 일주일 이상 숙성시켜야 손님상에 올릴 수 있다는 원칙을 20년 넘게 유지
- 도자기 그릇으로 음식의 향과 온도를 보호
해물부침개, 간장 한 가지가 바꾸는 것
해물부침개는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아니 먹어봤는데, 해물부침개의 간을 소금이 아닌 간장으로 맞추면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할머니의 설명은 단순합니다. "소금은 쓴맛이 난다." 여기서 '간장 글루타메이트'란 간장 속에 자연적으로 함유된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혀의 감칠맛 수용체를 자극해 음식의 풍미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이 단순히 짠맛만 더하는 것과 달리, 간장은 감칠맛을 동시에 입히기 때문에 재료 본래의 맛이 더 도드라집니다.
오징어와 부추—경상도 사투리로 '정구지'라고 부릅니다—를 넉넉히 넣은 반죽은 팬에 올리고 나서 두드리고 또 두드립니다. 이 타공 과정이 반죽 안에 기름이 고르게 스며들게 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제 경험상 이 두드리는 단계를 건너뛰면 겉면이 고르게 익지 않고 가장자리가 딱딱해집니다.
보리밥과 해물부침개가 왜 잘 어울리는지는 먹어보면 압니다. 구수하고 담백한 보리밥이 부침개의 기름진 풍미를 잡아주면서 서로 과하지 않게 됩니다. 제가 해운대에서 비슷한 조합을 먹었던 날,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도 그게 쑥스러웠습니다.

음식이 오래 사랑받는 진짜 이유
좋은 재료와 정성만으로 단골이 2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완전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 가게를 오래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 얘기만큼이나 "할머니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관계 지속성'이란 식당 맥락에서 손님이 같은 가게를 반복해서 찾게 만드는 비가시적 유대감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맛은 기억되고 사람은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겁니다. "많이 먹어야 힘난다"는 말 한마디에 낯선 여행객도 가족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제가 여행 중 들렀던 해운대 근처 밥집에서도 그랬습니다. 음식 맛보다 주인 어르신의 그 말 한마디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비싼 재료가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보리밥이라도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위생적이고 정직하게 만든 음식이라면, 그 음식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반복해서 경험한 손님이 다시 찾아오는 구조가 생기면, 그때부터 음식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서게 됩니다.
할머니는 "몸만 성하면 계속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지도 않는 장사라는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보람이 수익보다 앞서는 사람의 밥상은 먹는 사람도 압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리밥이 쌀밥보다 건강에 더 좋은 건가요?
A. 보리는 식이섬유와 베타글루칸 함량이 쌀보다 높아 혈당 조절과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쌀밥이 나쁜 건 아니고, 보리를 섞으면 영양 측면에서 보완이 된다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저는 보리밥을 먹고 나면 포만감이 더 오래간다고 느꼈는데,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Q. 가마솥 밥이 전기밥솥 밥보다 진짜 맛있는 건가요?
A. 맛의 차이가 없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확실히 다르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향과 누룽지 질감에서는 차이가 났습니다. 다만 가마솥은 화력 조절과 화재 위험 등 관리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가정에서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는 이런 방식이 왜 쓰이는지 이해하는 것이 더 실용적입니다.
Q. 해물부침개 반죽 간을 소금 대신 간장으로 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A. 간장에는 아미노산 계열의 글루타메이트가 포함되어 있어 단순한 짠맛이 아니라 감칠맛이 함께 입혀집니다. 소금만 쓸 때보다 재료 본연의 맛이 더 살아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저도 같은 재료로 두 가지를 비교해봤는데, 간장을 쓴 쪽이 뒷맛이 더 부드럽게 마무리됐습니다.
Q. 열무김치는 왜 일주일씩 숙성해야 하나요?
A. 유산균이 충분히 발효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짧게 담근 열무김치는 아삭하지만 국물이 텁텁하고 맛이 얕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주일 이상 숙성하면 젖산 발효가 자리를 잡아 국물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깊어집니다. 물론 기온이나 담그는 방식에 따라 최적 기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해운대 할머니의 보리밥 한 상이 20년 넘게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재료 선별부터 숙성, 조리 방식, 그릇 선택까지 타협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좋은 음식은 반드시 비싼 재료에서만 나온다는 시각도 있지만, 제 경험상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해진 단순한 음식이 오히려 오래 기억됩니다.
부산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혹은 그냥 보리밥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면, 해운대 근처에서 이런 밥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9,000원짜리 한 상이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는 경험, 저는 그게 꽤 오래갑니다.
[출처] 해운대 바다 앞 할머니의 구수한 보리밥

